논문때문에 사투아닌 사투를 버리고 있는 저로 인해,

블로그 포스팅이 점점 느려지고 있네요. 또한 하루 하루 시간이 갈 수록 제가 보고 경험하는 스웨덴을

 제가 이렇다 저렇다 글을 적어도 될까,

다소 단편적인 생각은 아닐까, 그런 고민들이 늘어나서 주저주저 했던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일기 적듯이 편하게 생각하고 느낀 것을 기록해보자는 취지의 블로그였으니까요,

 오늘의 포스팅을 자유롭게 시작해보려 합니다. ^^*

얼마 전에 논문 관련해서 인터뷰를 다녔는데요. 중학교 선생님과 고등학교 선생님을 인터뷰했어요.

두 분 다 생물 선생님이셨는데, 지속가능한 발전을 어떻게 가르치고 계시는지,

그 외에도 스웨덴 학교는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점들을 알 수 있었어요.


이 곳은 제가 처음 갔던 학교의 모습인데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있는 사립 학교였어요. 

공용공간에서 고등학교 언니 오빠의 기에 눌려 초등학교 아이들이 못 놀고 있을 것 같다는 저의 편견은

제가 한국에서 고등학교 언니 오빠들의 포스를 무서워했어서 일까요 ㅎ

고등학생들도 초등학생 마냥 자유롭게, 서로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오히려 잘 어울려져 있는것 같았어요.

그 분위기 자체가 나이나 학년으로 인해 누구 하나 주눅들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쓰는, 공간의 분위기였다고 표현하면 조금 느껴지시려나요.


교실의 모습은 이랬어요. 꼭 교실이 아니라 학부모 모임 실이라던지, 

클럽 활동실 같지 않나요? 

저는 스웨덴이라 무언가 다르겠거니 생각은 했어도, 사실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와. 

정말 다르다. 이런 공간의 변화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을 해봤어요.

가슴이 턱, 막히는 압박감만큼은 없는게 확실한 것 같죠? ^^

게다가 누구나 지나가면서 볼 수 있어서 선생님도 학생도 조금은 더 책임감있게 되지 않을까도 상상해 봤습니다.

이 밖에도 교실이 주르륵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실 옆에 소파들, 다용도 테이블들,

컴퓨터들, 책꽂이와 책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어요.

아무래도 학생수가 적고, 빌딩은 커서 공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고등학교하면 떠오르는 공간의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어요.

어찌보면 제가 다니는 대학교의 분위기와 거의 흡사했다고 표현하는게 맞는것 같아요.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의 공간, 그러면서도 좀 따뜻한 '집'같은 공간.

시멘트와 차가운 복도, 위엄과 불량스러움, 도망과 벌, 반항과 괴성. 그런 제 기억 속의 학교와는 정말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다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지위는 스웨덴에서 굉장히 낮고, 학생들과 아주 동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하고 봉급도 명예도 아주 낮습니다. 학생들의 성취도 점수도 OECD국가의 평균에 머무르지만, 한국이 언제나 탑에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되죠. 

하지만,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떠날 때, 무엇을 얻어가느냐 하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에서는 어떤지,

명확한 수치로 나와있는 것은 없지만, 명확한 수치로 잴 수 없는 많은 것들에 있어서 저는 스웨덴 교육이 많은 중점을 두어 왔었다고 느낍니다.





제가 갔던 고등학교의 케이스방법론에 의한 수업들의 스케줄입니다.

국영수사과의 과목들이 아니라, 두과목 이상이 몇가지 사례(케이스)를 중심으로 묶여져서

조금 더 사회적 이슈나 현실 속 문제들을 다각도에서 짚어볼 수 있는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수업이라고 보여지네요.


물론 지구 그림이 가득한 사진에는 실제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주제로 놓여져 있기도 하네요.

소비와  쓰레기, 등 환경에 관련된 주제들이 위에 있다면, 아래 사진에는 인권 문제들이 주로 다루어져 있네요.

엠네스티나 유엔, EU에 대한 토론, 구금자들과 관련해 의회에 편지 쓰기 등의 활동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 정말 제가 최근 까지 들었던 대학원 수업이랑 어쩐지 굉장히 비슷해보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시절에 저런 주제들에 대해 입을 뗄 수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 하긴, 요즘에도 무척 어렵긴 합니다만,

어렸을 때부터 친숙해진 주제들이라면 조금 더 쉬웠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등학교 때 수능 시험 유형만 파고 들었던 저로서는 이런 수업들이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한국에 이런 수업이 있다고해도 수능이나 내신 시험 때문에

과연 인기가 있을까. 참여가 있을까. 학부모의 항의가 빗발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미처 보지 못하고 있는 지구 반대편 이야기들이라던지,

가까운 곳의 이야기라도 접하지 못하는 이야기들과 

국영수사과음미체 등등의 학과목 수업들의 결합. 그리고 한가지 과목만이 아닌 다양한 과목의 접목.

편안한 분위기의 학교 공간만큼이나 열린 생각과 자유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해줄것 같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의 한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중학교는 어떨까요? ^^ 

중학교이야기는 다음 편에 (가능한 빨리 ㅠㅠ)쓰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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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르야 2013.06.07 20:53
  • S매니저 2013.06.28 13:57 신고 ADDR EDIT/DEL REPLY

    덕분에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 클라란스 2014.09.02 21:13 신고 ADDR EDIT/DEL REPLY

    유용한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기대할께요

요즈음 저는 석사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스웨덴에 와서 무엇이 가장 어렵냐고 한다면, 

저는 현재까지는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다른 나라에 가도 사정은 비슷할겁니다.

왜냐하면, 첫번째는 언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고,

 두번째는 의견이라는 것을 부재중으로 두고 살아온 제 탓일겁니다. 


저는 두번째 이유에 대해 오늘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왜 나는 의견없이 살아왔을까.







저는 물론 다른 무수한 이유도 많지만, 제가 받아온 스무 해 가까운 한국의 교육과 문화에 대해서 떠올렸어요.

제가 '교육'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사고의 흐름이 자연히 그 쪽으로 가는 탓이기도 합니다.


사고의 흐름은 마치 내 안에서 자연히 만들어지는 것만 같지만

사실 자라온 환경과 문화적인 이유로 그러한 사고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비중이 참 크죠.

무의식 중에 떠올리는 논리와 상식은 그 사람이 보고 듣는 프레임을 통해 나오는 것이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제가 받아온 교육은 최대한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라는 주의였던것 같아요.

물론 다양한 교육이 존재하지만, 제 경우만 비추어 제가 왜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일까에 초점을 맞추어 볼께요.


교실이 있습니다.

40여명이 넘는 학생이 선생님 한 사람에 의지하여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열심히 받아적는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누군가 손을 들어 질문을 합니다. 

모두들 따가운 눈초리로 '뭐야 흐름 끊고' 라며 그 학생을 째려보죠.

선생님까지 심지어 '수업 끝나고 얘기합시다.'라고 그 학생의 질문을 수업 외로 제낍니다.


이러한 풍경이 혹시 익숙하신지요.


저는 이러한 풍경이 익숙한채로 중고등학교를 지내왔기 때문에, 이게 당연한 교육인줄로만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어떤 한 마디에서 시험이 나올지 모르므로 언제나 정갈하고 빽빽하게 받아적은 학생의 노트는

 (정말 심지어 매점에서 팔리기도 하였고) 인기가 많았습니다.

시험은 선생님의 한 마디가 좌지우지 하며, 형광펜으로 그어라 하는 것을 놓친다면 시험 문제를 하나 놓치는 것과 다름없다는 당연한 인식은 우리를 늘 긴장하게 하였고, 경쟁하게 하였고, 달달달 암기하게 하였죠.


그런게 교육이었습니다. 숨막히는 시간은 학생들을 옥상에서 떨어뜨리게 하고, 친구를 험담하여 따돌리게 하고, 과외와 학원을 전전하며 하늘 빛도 못보는 청춘을 만들어 놨습니다. 


그런 교육 아래에서 저는 입을 다물고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고분고분 선생님 말씀을 '듣고' '받아적고' 그것이 진리이자 생명인양 '외우기'바빴고, 시험성적에서 한 개를 틀리는 것이 죄악인양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던것 같습니다.


물론 그 교육이 지속되는 이유는 수능시험이라는 관문과 일맥상통하여 

생애 최대 목적이라도 되는 듯한 대학교의 이름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는 그렇게 스무살이 되어 원하는 이름의 대학교를 꼬리표로 얻게 되었고,

비슷한 수업과 시험의 방식으로 4년 넘게 지식인인양 캠퍼스를 누볐지만,

늘 제 스스로가 멍청하다고 느낍니다.  그도그럴것이, 제 안에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가 뭘 '아는지', 무엇을 '알고 싶은지', '왜' 알고 싶은지. 지금까지도 종종 어려움을 겪습니다.


12년의 초중고 교육 속에서 저는 '받아들이기'에만 능력이 생겼던겁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에는 뒤지지 않을지언정, 내 의견의 부재가 오래도록 지속된거죠. 


이게 왜 문제냐구요?


스웨덴에 와서 대학원 수업을 시작하였을 때부터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실의 풍경은 이렇습니다.


펜을 들고 노트를 끊임없이 받아 적는 학생이 나를 포함 중국 친구들뿐.

나머지는 가끔, 뭐라뭐라고 자신의 의견과 참고가 될 문헌의 출처나 용어 등을 노트에 메모합니다.

교수는 언제든지 자신을 방해하라고 누누히 말합니다.

친구들은 정말 그 교수를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그게 연관이 얼마나 깊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엉뚱한 질문도 교수는 최대한 성의있게 대답하면서도 줄줄이 연관지어 질문을 던집니다.

학생들은 그 질문들에 대답합니다. 누군가 반박합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반박합니다.

그러다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을 다 못보고 수업이 끝납니다.

프레젠테이션 파일과 교과서는 수업 내에 참고가 되는 중요한 자료일 뿐 교수가 안내할 필요가 없으며,

그 자료를 뒤지고 의견을 나누는 것은 학생들의 몫입니다.




저는 너무나 벙쪘습니다. 

아니 수업이 뭐 이모양이야, 시험엔 대체 뭐가 나오는거야. 교수는 도대체 뭘 가르치는거야.

시험과 수업과 교수의 말은 긴밀한 연관이 아닌 풍성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백페이지의 책을 이리저리 읽으며, 이에 대해 반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고, 어떤 점이 중요하고 어떤 점이 비판할 만한 이슈인지 토론하기 바빴습니다. 저는 혼자 엉덩이 붙이고 입을 다물고 조용한 곳에서 공부를 하지 않고,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 어색해서 공부를 했다는 기분조차 안들었습니다.

 친구들이 모여도 입을 한 번 뗄수가 없었죠. 도대체 감히 교수가 쓴 책을, 

머릿속에 든 것도 없는 제가 비판을 하다니요. 이게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2년이 다되어 가면서 저는 경쟁을 부추기고, 점수로 재단하는 교육이 

지속가능한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저는 이제 조금씩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기 시작한것 같아요. 어떤 의견에 대해 애써 부정적으로도 생각해보고, 긍정적으로도 생각해보고, 이상적으로도 생각해보고, 현실적으로도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도 단단히 굳어진 제 사고의 흐름은 때때로 

이 곳의 교육과 사회 안에서 제 자신을 외계인으로 만들기 부지기수지만요.



지속가능한 발전은 어떤 이론과 철학을 역사적으로 달달 외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정하고 싶은 지구촌 반대편의 현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파멸하고 있는 동물과 식물을, 

끊임없는 욕심과 사회적 기대로 인한 소비의 습관을 돌이켜보고, 행동을 수정하고, 사고와 습관을 수정하는 

총체적 변화가 요구되는 어렵고 복잡한 일들이 

개개인과 사회와 단체 등 많은 사람과 주체를 통해 일어나야 하는 변혁인것 같습니다.



그동안의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내 행동과 습관, 사고의 흐름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4월에도 눈이 당연하듯이 내리고, 식물과 동물종이 급격히 감소하여 생태계가 파괴되고, 

이에 따라 인간에게도 많은 악영향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자식들에게 일어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에 

저는 비판적인 사고를 만드는 교육이 한국 뿐만이 아니라 

많은 일방적, 주입식 교육을 가진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육에 늘 통합식 교육과, 토론 및 비판 교육, 학생이 주체인 교육 과 같은 방법과 모델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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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르야 2013.04.10 01:25
  • 페퍼코카 2013.04.10 06:25 신고 ADDR EDIT/DEL REPLY

    첫번째 사진 윌리를 찾아라 같은 걸? :) 풍성한 연관이라는 단어가 참 좋다.

  • Linnea 2013.04.11 05:34 신고 ADDR EDIT/DEL REPLY

    무척 공감 가는 글이네요 : ) 스웨덴에서 공부하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Vad tycker DU?, '넌' 어떻게 생각하니? 라는 질문. 책에 나와있는 이론이나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대답을 해도 제 대답이 '틀렸다'라고 하거나 답을 바로 제시하는 교수님은 아직 한분도 보지 못했어요, 항상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먼저 묻습니다. 그럼 전 또 멍..해지지만..;; 그러한 토론과정이 결국엔 오랜시간 동안 제 머릿속에 남아서 지식이 되어가는것 같아요. 똑똑하지만 창의력은 부족한 한국인들이 이러한 토론식의 교육과정을 거친다면 정말.. 천하무적이 되지 않을까요? ;-)

    • 보르야 2013.04.11 06:12 신고 EDIT/DEL

      감사해요 :) 정말 그 긴 교육의 시간 동안에 '왜'라는 질문만 많이 받았다면 이렇게 지금에 와서 막막하진 않을텐데 말이예요. 지도교수님 만날때마다 저는 답답한 학생이 되고 맙니다. 생각이 없는, 무념 무상하고 있는 그런 학생으로 비추어지는 것 같아 때때로 부끄럽고 속상하더라고요. 천하무적이 되는 힘은 자신의 의견을 잘 알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순간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가봐요. ^^

  • meson 2013.04.12 11:03 신고 ADDR EDIT/DEL REPLY

    http://blog.meson.kr/388 예전에 생각의 흐름에 대한 생각을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화두로 쓴 글인데 학교 다닐때 항상 반항심이 많았던 것을 저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때 왜 이런 지식을 주입해야하는지 마치 지식 세균들이 우리를 침투해서 더이상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창의적 사고의 결과물에 더 큰 가치를 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저는 영어는 짧아도 토론과정을 통해서 핏대올리며 토론하는 매일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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